오십, 초사고 글쓰기 도전하다

쇼펜하우어와 일원론 : 내가 너고, 네가 나다.

viva J 2024. 1. 8. 01:55

*3분과제 : 창의성과 도파민의 상관관계

 

정리 : 가만히 걸을 때(음악 없이, 편안한 길을) 뇌는 지루해진다. 도파민을 원하게 된다. 자동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 몰입을 할 경우엔 효과적이지 않지 않을까?

    내가 걸었던 길들은 편안한 길이 아니어서였을까?

    편안한 길-어떤 위협도 없는-을 계속 무의 상태를 창조하면서 걸어봐야겠다.

 


미션3

자청 유튜브 쇼펜하우어 철학정리 보고 영상내용 나의 지식으로 정리하기

 

영상 : 쇼펜하우어 철학 정리

 

1. 인간은 세가지 욕구가 있다.

1) 자기 보존의 욕구

2) 재미추구의 욕구

3) 종족 보존의 열망

 

2. 세상은 지옥이다.

 

3. 해결책

1) 금욕주의

2) 쾌락과 불행은 추와 같다.

3) 건강하기

4) 음악감상

5) 자연 경관 감상하기

6) 독서하기

 

4. 너와 나는 "의지"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즉 너와 나는 하나이다.

 


영상의 마지막에 나오는, 너와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이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내용은 일원론과 같다.

서구의 사상은 이원론이다. 기독교의 이원론이 지배하는 서구에서, 일원론을 말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서구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결국 너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은 많은 놀라운 것들이 가능하게 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나 역시 타인에게 관심갖고 이해하는 훈련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라는 것,

그래서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 볼 때 그 사람의 배경으로부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래서 그가 이런 말을 하는구나!

그의 내면에 이런 것들이 있겠구나!

그는 외롭구나!

등등이 보이게 되면서, 싫다는 감정보다는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다.

연민은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작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속에서 나온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다.

 

지대넓얕과 채사장의 강의를 들으면서 일원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세계를 이해하는 두 사상 중 한국 사회는 이원론을 따르고 있었다. 이원론의 눈으로 세상을 봤을 때 나는 답답했다.

 

일원론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고, 그 관점은 공감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내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했다.

 

철학에 대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를 버리는 긍정적이 결과도 얻었다. 그래서 자청님이 말하는 쇼펜하우어나 라캉에 대해 거부하는 대신, 블로그 글을 읽어보는 힘이 생겼다.

 

어쩌면 언젠가,

철학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육십에 읽는 철학 이라는 책을 쓰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초사고 글쓰기 강의를 들으니, 그동안 내가 메모했던 것들을 글로 적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초사고 글쓰기로 정리해야겠다.

내적글쓰기, 점점 재미있어진다!

 


자청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혹은 블로그 글을 보면서, 반론들이 떠올랐다가 바로바로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어떻게 붙잡아두지?